그런데 장터 한 쪽에 닭장(鷄市場)이 서서 온갖 닭들이 우글댔다. 김 선달(金 先達)이 닭장 속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유난히 살이 포동포동하고 털에 윤기(潤氣)가 흐르는 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김 선달(金 先達)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닭 장수에게 물었다.
"주인장(主人丈), 이게 무슨 날짐승이오? 거참 통통한 게 보기 좋구먼." 그 말을 듣자 주인(主人)은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世上)에 얼치기가 많다고 하더니만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인가보구나. 닭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꽤나 어리석은 놈인가보다.' 주인(主人)은 김 선달(金 先達)이 얼치기인줄 알고 골려먹을 셈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봉(鳳)이요."
난데없이 닭을 봉황(鳳凰)새라고 속인 것이다.
"뭐, 봉(鳳)이라고?
오호, 말로만 듣던 봉황(鳳凰)새를 여기서 제대로 보게 되었군.
그래, 그 새도 파는 것이오?"
"물론(勿論)이오. 팔지 않을 거면 뭐하러 장터까지 가지고 나왔겠소?"
주인(主人)은 '이제 제대로 걸려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값은 얼마나 받을 생각이오?" "열 냥만 내시오." 닭은 한 냥씩 받고 팔고 있지만,
봉(鳳)은 닭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가기 때문에 열 곱은 더 내야 한다는 게 주인(主人)의 주장(主張)이었다.
김 선달(金 先達)은 값을 깎을 생각도 않고 주인(主人)이 달라는 대로 열 냥을 고스란히 건네주고 닭을 샀다. 그리고는 곧바로 관가(官家)로 달려갔다. 김 선달(金 先達)은 관가(官家)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품에 안고 온 닭을 보여주며 말했다.
"내가 방금(方今) 귀(貴)하디 귀(貴)한 봉황(鳳凰)을 구(求)했는데, 이것을 사또에게 바치려고 하오. 그러니 사또께 말씀을 전해주시오." 그리하여 김 선달(金 先達)은 닭을 가지고 사또 앞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천지개벽(天地開闢)을 한들 닭이 봉(鳳)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結局) 김 선달(金 先達)은 사또를 희롱(戱弄)한 죄(罪)로 곤장(棍杖) 열 대를 맞았다. "사또, 억울(抑鬱)합니다. 맹세코 저는 죄(罪)가 없습니다."
꼼짝없이 곤장(棍杖)을 다 맞은 김 선달(金 先達)이 눈물을 질금거리며 사또를 향해 하소연을 했다.
"이 놈이 아직도 정신(精神)을 못 차렸구나. 닭을 봉(鳳)이라고 속인 죄(罪)가 얼마나 중죄(重罪)인데 죄(罪)가 없다는 것이냐?" "저는 그저 닭장수가 봉(鳳)이라고 하기에 닭 값의 열 배를 치르고 샀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듣자 사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라고? 분명(分明) 닭장수가 봉(鳳)이라고 했단 말이냐?"
"예,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왜 닭 값의 열 배나 치렀겠습니까?" "음, 그래?........." 사또는 제법 영민(英敏)한 사람이어서 상황(狀況)을 금방( 今方)눈치 채고는 닭장수를 불러들이게 했다.
"네가 닭을 봉(鳳)이라고 속여 열 냥을 받고 판 게 사실이냐?" 볼기를 맞아 얼굴에 잔뜩 독이 오른 김 선달(金 先達)이 노려보고 있는 터라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狀況)이어서 닭장수는 사실(事實)대로 고(告)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하면 좋겠느냐?" 사또가 김 선달(金 先達)을 보며 말했다. "저 자가 저를 속여 공매 를 열 대씩이나 맞았으니 저도 그 대가는 받아야겠습니다. 제가 닭 값의 열 배를 주고 가짜 봉(鳳)을 샀듯이 저자에게 제가 맞은 곤장(棍杖)의 열 배인 백 대를 쳐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저 자에게 준 열 냥의 열 배인 백냥을 지불(支拂)하라고 판결(判決)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공정(公正)할 듯 싶습니다."
사또가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결국(結局) 닭장수는 거의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 분명(分明)한 곤장(棍杖)백 대를 포기(抛棄)하고, 김 선달(金 先達)에게 백 냥을 주는 것으로 사건(事件)을 마무리하였다. 뒷날 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국 각지(全國 各地)에 퍼져 사람들은 김 선달(金 先達)의 이름 앞에 '봉(鳳)이'라는 별칭(別稱)을 붙여서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