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990년까지  국제전신과 국내통신의 본산이었던 KIT와 중앙전신국 건물

115 전보 접수장면

일본오끼사의 MS110, 한때 우리나라 기업이나 무역업체, 우체국 등의 필수품은 ‘텔렉스(Telex)’였다. 전화처럼 다이얼을 돌려 텔레타이프를 두드리면 문자가 송신되는 방식으로 문서증명서, 서류 등을 보내거나 보관하는데 유용했다. 하지만 팩시밀리, 컴퓨터 등 첨단통신의 등장으로 우리 주위에서 거의 사라졌다.

1961년 9월 완공된 광화문 쌍둥이 빌딩. 왼쪽 건물은 1961년부터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기획원, 문화공보부를 거쳐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며, 오른쪽 건물은 미국 대한원조기관(유세이드USAID) 건물로 사용되다가 1970년 12월부터 미국대사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96년 리모델링  전국의 장거리 통신의 중심국이 되어있는 혜화전화국  중앙전신국이 광화문에서 혜화전화국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직원들이 통신공사로 전환되는 과정을 겪어온 삶의애환이 서려있는 현장이다.

2024년 4.23일 오후  혜화전화국 

96년당시 해외개발공사 건물 (우측) 돈을 벌기위해 해외로 나가는 중동지역 건설 노동자들의 교육장소로 이용되었던 건물

중앙전신국 출신 공무원들은 모두 흩어지고 없지만 추억의장소인 혜화전화국은 중요시설로 유지되고 있다.

특이하게 지어진 해외개발 공사로 이용되던 건물은 아직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혜화전화국은 장거리 통신의 중심국으로 국가 중요시설에 속한다.

청계천에 유유히 앉아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쇠백로 한마리

김 선달( 金 先達)은 
서울 장안(長安)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 번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터로 구경 을 나섰다.  

​그런데 장터 한 쪽에 닭장(鷄市場)이 서서 온갖 닭들이 우글댔다.  
​김 선달(金 先達)이 닭장 속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유난히 
살이 포동포동하고 털에 윤기(潤氣)가 흐르는 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김 선달(金 先達)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닭 장수에게 물었다.  

"주인장(主人丈), 
이게 무슨 날짐승이오? 
거참 통통한 게 보기 좋구먼."  
그 말을 듣자 주인(主人)은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世上)에 얼치기가 많다고 하더니만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인가보구나. 
닭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꽤나 어리석은 놈인가보다.'    
​주인(主人)은 
김 선달(金 先達)이 얼치기인줄 알고 골려먹을 셈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봉(鳳)이요."  

​난데없이 닭을 봉황(鳳凰)새라고 속인 것이다.  

"뭐, 봉(鳳)이라고?  

​오호, 말로만 듣던 봉황(鳳凰)새를 여기서 제대로 보게 되었군.  

​그래, 그 새도 파는 것이오?"  

"물론(勿論)이오.  
​팔지 않을 거면 뭐하러 장터까지 가지고 나왔겠소?"  

​주인(主人)은
'이제 제대로 걸려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값은 얼마나 받을 생각이오?"  
"열 냥만 내시오." 
닭은 한 냥씩 받고 팔고 있지만,  

봉(鳳)은 닭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가기 때문에
열 곱은 더 내야 한다는 게 
주인(主人)의 주장(主張)이었다.    

​김 선달(金 先達)은 값을 깎을 생각도 않고 주인(主人)이 
달라는 대로 열 냥을 고스란히 건네주고 닭을 샀다.  
그리고는 곧바로 
관가(官家)로 달려갔다.  
​김 선달(金 先達)은 관가(官家)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품에 안고 온 닭을 보여주며 말했다.  

"내가 방금(方今) 귀(貴)하디 귀(貴)한 봉황(鳳凰)을 구(求)했는데, 
이것을 사또에게 바치려고 하오. 
그러니 사또께 말씀을 전해주시오."    
​그리하여 김 선달(金 先達)은 
닭을 가지고 사또 앞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천지개벽(天地開闢)을 한들 닭이 봉(鳳)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結局) 김 선달(金 先達)은 사또를 희롱(戱弄)한 죄(罪)로 
곤장(棍杖) 열 대를 맞았다.  
​"사또, 억울(抑鬱)합니다. 
맹세코 저는 죄(罪)가 없습니다."  

꼼짝없이 곤장(棍杖)을 다 맞은 김 선달(金 先達)이 눈물을 
질금거리며 사또를 향해 하소연을 했다.    

​"이 놈이 아직도 정신(精神)을 못 차렸구나. 
닭을 봉(鳳)이라고 속인 죄(罪)가 얼마나 중죄(重罪)인데 
죄(罪)가 없다는 것이냐?"  
​"저는 그저 닭장수가 봉(鳳)이라고 하기에 
닭 값의 열 배를 치르고 샀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듣자 사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라고? 
분명(分明) 닭장수가 봉(鳳)이라고 했단 말이냐?"  

"예,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왜 닭 값의 열 배나 치렀겠습니까?"  
"음, 그래?........."   
사또는 제법 영민(英敏)한 사람이어서 상황(狀況)을 
금방( 今方)눈치 채고는 닭장수를 불러들이게 했다.  

​"네가 닭을 봉(鳳)이라고 속여 열 냥을 받고 판 게 사실이냐?"    
볼기를 맞아 얼굴에 잔뜩 
독이 오른 김 선달(金 先達)이 노려보고 있는 터라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狀況)이어서 닭장수는 사실(事實)대로 고(告)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하면 좋겠느냐?" 
​사또가 김 선달(金 先達)을 보며 말했다.  
"저 자가 저를 속여 공매 를 
열 대씩이나 맞았으니 저도 그 대가는 받아야겠습니다. 
제가 닭 값의 열 배를 주고 가짜 봉(鳳)을 샀듯이 
저자에게 제가 맞은 곤장(棍杖)의 열 배인 백 대를 쳐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저 자에게 준 
열 냥의 열 배인 백냥을 지불(支拂)하라고 판결(判決)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공정(公正)할 듯 싶습니다."   

​사또가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결국(結局) 닭장수는 거의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 
분명(分明)한 곤장(棍杖)백 대를 포기(抛棄)하고, 
김 선달(金 先達)에게 백 냥을 주는 것으로 사건(事件)을 마무리하였다.    
​뒷날 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국 각지(全國 各地)에 퍼져 
사람들은 김 선달(金 先達)의 이름 앞에 '봉(鳳)이'라는 
별칭(別稱)을 붙여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리숙하여 무엇이나 빼앗아 먹기 
좋은 사람을 농(弄)으로 일컬을 때  

'봉(鳳) 잡았다'는 
표현(表現)을 쓰기 시작(始作)했다.


           - 역사속 이야기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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