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나의 겨울은 가끔 당신이었습니다 / 이경선
그해 겨울을 기억합니다
그해 겨울이 좋았습니다
이유가 무어라 물으신다면
이따금 당신이었다 하겠습니다
그해 겨울 나는 좋았습니다
꽁꽁 싸맨 당신의 옷가지와
옷가지 사이 빼곡 내민 당신의
수수함이 좋았습니다
그해 겨울 나는 따스했습니다
당신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이
밤사이 온기로 자라나 곁을
덮어주었습니다
모닥불 일렁이던 밤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불빛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때로는 나란히 누어
별자리를 세기도 했습니다
그해 겨울을 기억합니다
그해 겨울이 좋았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중입니다
이따금 당신이 떠오릅니다
(2)
겨울 차창 / 나태주
너의 생각 가슴에 안으면
겨울도 봄이다
웃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겨울도 꽃이 핀다
어쩌면 좋으냐이러한 거짓말
이러한 거짓말이 아직도
나에게 유효하고
좋기만 한 걸
지금은 이른 아침 청주 가는 길
차창 가에 자욱한 겨울 안개
안개 뒤에 옷 벗은
겨울나무들
왜 오늘따라 겨울 안개와
겨울나무가 저토록 정답고
가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냐
(3)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움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들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온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4)
겨울 들판 / 이상교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5)
겨울 편지 / 이해인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 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 본다.
(6)
(7)
겨울 강에서 / 정호승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 강 강 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은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이 소리치면 소리쳐 울리
(8)
겨울 편지 / 안도현
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
부르르 몸을 흔듭니다
눈물겹습니다
머지않아
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
사랑은 이렇게 더디게 오는 것이겠지요
(9)
겨울 사랑 / 문정희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10)
겨울 /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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