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강에 관한 시모음
순간의 거을 2 / 이가림
- 가을 강
가랑잎 하나가
화엄사 한 채를 싣고
먼 가람으로 떠난 뒤
서늘한기러기 울음
후두득 떨어져
물거울 위를
점자 (點字)인 양 구른다
노을 타는단풍밭
보랏빛 이내에 묻히고
깊은 하늘의 이마에 걸린
가버린 누이의 눈썹
그 그늘에 이슬들
아롱아롱 맺힌다
가랑잎 하나가
가을의 끝한줌 허무를 싣고
먼 어둠으로 떠난 뒤
가을 강 /이원문
찾아온 강 언덕
강바람에 여름은시원 했는데
가을 강의 가을 바람은
왜 이리 쓸쓸하기만한 것인지
씨앗 매달고 늘어진 풀
퇴색 되는 나뭇잎들
이 가을 더 깊으면 단풍들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억새꽃 피어 바람에 눕고
잃어도 얻어도 강물에 녹은 세월
누구의 시간을 저 강물이 빼앗았나
흐르는 강물 위 건너는 구름 산 넘고
인생 띄워 바라보니 거스르지 못한다
강물에 마음 섞어 바라보는 강
석양의 이 인생 나 어디에 데려 왔나
가을 강가에서 /정심 김덕성
불어오는 갈바람에
낙엽이 휘날리며 떠나는 강가
갑자기 울적해 진다
조금도 머물러 주지 않고
야속하게 시공은 아쉬움 남기며
강물은 희비를 안은 채
물 길 따라 흘러간다
행복한 순간들
슬픔으로 눈물을 흘린 사연들
가슴 아파했던 나날들을
새 물길로 보낸 사랑
모난 돌에 부딪혀
모래알이 된 지난 수많은 시간
지금 그리움으로 찾아 온 사랑도
인생의 강물 되어 흘러가고
하늘엔 노을이 내리고
가을 강 /김근이
아이야
가을이 한끝 짙어 가는 구나
이 가을을 바라 볼 때는
마음 가득히
그리움을 깔고 그려 보아라
그러면 가을은
외진 길에서 만나는
코스모스 꽃잎만큼 이나
애틋한 느낌으로 다가 올 것이다
저녘 햇살에
익어가는 당풍 잎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호들갑을 떨면서 날리는
하늘 자락은
왜 저리도 슬픈 색깔일까
저 하늘 끝자락을 잡고
돌아가던
소녀의 뒷모습을
코스모스 꽃잎위에 내려놓는
이가을은
아무래도
우리네 마음속으로
흘러드는 강물인가
그 강물을 따라
나는 지금도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구나.
가을江 /김명인
살아서 마주보는 일조차 부끄러워도 이 시절
저 불 같은 여름을 걷어 서늘한 사랑으로
가을 강물 되어 소리죽여 흐르기로 하자
지나온 곳 아직도 천둥치는 벌판 속 서서 우는 꽃
달빛 亂杖 산굽이 돌아 저기 저 벼랑
폭포지며 부서지는 우레 소리 들린다
없는 사람 죽어서 붉 밝힌 형형한 하늘 아래로
흘러가면 그 별빛에도 오래 젖게 되나니
살아서 마주잡는 손 떨려도 이 가을
끊을 수 없는 강물 하나로 흐르기로 하자
더욱 모진 날 온다 해도
저무는 가을 강가에서 /최홍윤
강물이 흐느끼고
희끈희끈한 갈대 꽃이 노년같이 흔들린다
저물어 간다는 것은
낡아지고 늙어간다는 것 같아 서글프다
가을밤, 고요의 천지
누가 죽어가고 있는지
어느 골짜기에서인지 방정맞은
개 짖는 소리만 숨넘어갈 듯하다
가물거리는 별빛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강바람
내 한평생의 뉘우침은
고기 비늘처럼 비릿하고
너무 쓸쓸한 것도 괴롭다
두 무릎을 감싸고 앉아
저무는 강가에서 혼자임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가을 강 /권달웅
가을 강은 슬프네.
사납게 위험수위를 알리다가
낮아진 가을 강은 고요하네.
떠난 사람의 마음처럼
여기저기 단풍을 띄우며
꿈꾸는 가을 강은 쓸쓸히
자신을 돌아보게 하네.
많은 사람들을 잃고
집과 논밭까지 잃어버린
상처와 공허를 이기기 위해
높게 쌓아올린 강둑에는
어느새 개망초가 피고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하는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강물 굽이굽이를
눈물 어린 눈으로 따라가면
도꼬마리 까만 열매가
악착같이 달라붙네.
악착같이 따라오네.
가을 강(江) /임재화
인적 하나 없는 가을 강가에서
멀리 서산에 뉘엿뉘엿해 저물고
붉은 노을도 이미 그 빛이 바랬다.
이제 어스름 어둠이 내려앉아서
겨우 서너 채 있는 쓸쓸한 강촌
집집이 하나둘 등불을 밝힐 때
지나던 인적마저도 끊긴 강가에서
소슬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에 실려
자욱한 물안개만 말없이 다가온다.
가을 강 /권오범
시월의 소슬한 입김에
건강했던 초목들 병색이 완연하자
모두가 제 잘못인 양
밤새 자반뒤집기했나보다
신열 같은 안개 속에서
머리 산발한 채 밤샘한 수양버들이
까칠해져 서성대는 강둑
코스모스 꽃들도 더러 쑥대머리로 파마했다
햇귀 머금고 혈색이 돌자
철새들 앉을자리 다림질하느라
굽이굽이 몸 추슬러
침묵으로 써내려가는 저 너그러운 역사
낮에 온몸으로 끌어안은 미완성 수채화
얼룩이 더 번질까봐 엎치락뒤치락
습관적인 밤 가슴앓이 눈치 챈 듯
갈대들이 머리 풀고 오슬오슬 흐느끼고 있다
가을 강 /최정희
푸른 하늘 가로지르는 바람아
단풍잎 타는 향기에
노을 빛이 출렁인다
왜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가
그대 마음 왜 움츠러드는 걸까
죄지은 어린양처럼
어디선가 들려 오는 날벼락 소리
못이 박히도록 귀에 익은
저 아우성
순한 가슴 찢어지는
가을 강이 처량하여라
아 부끄러워라
가을 하늘이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맑음이
왜 슬퍼지는지!
가을 강물 소리는 /이향아
이제는 나도 철이 드나봅니다, 어머니
가을 강물 소리는 치맛귀를 붙잡고
이대로 그만 가라앉거라, 가라앉거라
타일러쌓고
소슬한 바람 내 속에서 일어나
모처럼 핏줄도 돌아보게 합니다
함께 살다 흩어지면 사촌이 되고
다시 가다 길을 잃어 남남이 되는,
어머니,
가을 강물 소리에 귀기울이다가
지금은 내왕이 끊긴 일가친척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고 가면 바다가 벼랑처럼 있어
거기 함께 떨어져 만난다고 하지만
죽어서 가는 천당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가을 강물을 보면 문득 용서받고 싶습니다, 어머니.
즐펀히 너브러진 물줄기가 심장으로 다가와
땀으로 눈물로 이슬맺는 은혜
가을 강가에 서서
나는 모처럼
과묵한 해그림자 갈대 그늘을
따라가면서
잠겨들면서
내 목숨 좁은 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가을 강 /노금선
조약돌 투명한 가을 강에
나를 씻는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영혼의 때 씻어버리면
물보다 더 맑은 세상 보이고
풀빛 기쁨 넘친다
겸손치 못하고
절제하지 못한 채 살아 온
오만과 방종 다 씻어내고
텅 비어 더 없이 깨끗한
가을 강
내 영혼 어디쯤에도
이렇게 맑은 강 흐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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