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ter is wide 
강 폭이 넓어요.​
I can't cross over
그래서 난 건너갈 수 없어요.​
And neither have the wings to fly
그리고 우리 둘 다 날아갈 수 있는 날개도 없어요.​
Give me a boat that can carry two
나에게 보트를 주세요. 우리 둘을 데려가 줄 수 있는.​
And both shall row, my love and I
그럼 우리 둘 다 노를 저을 거예요. 내 사랑과 내가요.​
Oh, love is gentle and love is kind
사랑은 부드럽고 사랑은 친절하죠.​
The sweetest flower when first it's new
가장 향긋한 꽃은.. 처음 필 때죠.​
But love grows old and waxes cold
그러나 사랑은 나이가 들고.. 차가워지죠.​
and fades away like morning dew
그리고 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버려요.
There is a ship and the ship sails to sea
배가 있어요. 그 배는 바다로 나아가요.​
She's loaded deep as deep can be
그 배는 최대한 많은 짐이 실려있어요.​
But not as deep as the love I'm in
그러나 내 사랑만큼 많지는 않아요.​
I know not how I sink or swim
난 몰라요. 어떻게 가라앉는지도 어떻게 수영하는지도.
*I know not = I don't know
The water is wide 
강 폭이 넓어요.​
I can't cross over
그래서 난 건너갈 수 없어요.
And neither have the wings to fly
그리고 우리 둘 다 날아갈 수 있는 날개도 없어요.​
Give me a boat that can carry two
나에게 보트를 주세요. 우리 둘을 데려가 줄 수 있는.​
And both shall row, my love and I
그럼 우리 둘 다 노를 저을 거예요. 내 사랑과 내가요.​
And both shall row, my love and I
그럼 우리 둘 다 노를 저을 거예요. 내 사랑과 내가요.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병철  회장의 24개의 종교적 질문 ...
차동엽 신부의 답변) 

24년전 이병철씨가 제시한 신, 종교, 사회, 죄,
 영원, 신앙, 구원등에 관한 24가지 질문과 
카토릭 신부의 대답- 함께 생각해 봄니다.

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왜 드러내지 않나?”
이병철 회장, 타계 한달 전 천주교에 24개항 종교 질문.
차동엽 신부, 24년 만에 답하다

1987 이병철 회장 “신이 인간 사랑한다면 왜 고통·불행 주는가”
2011 차동엽 신부 “신이 준 건 자유의지 … 그것 잘못 쓸 땐 고통”
잠자던 질문이 눈을 떴다. 무려 24년 만이다.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내밀었던 종교적 물음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24개의 질문은 A4용지 다섯 장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신(神)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라는 
첫 물음부터 “지구의 종말(終末)은 오는가?”라는 
마지막 물음까지,경제계의 거목이 던졌던 종교적 질문에는 
한 인간의 깊은 고뇌가 녹아 있다. 

그 고뇌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종교적 물음을 정면으로 관통한다. 
이 질문지는 1987년 ‘천주교의 마당발’로 통하던 절두산 성당의 
고(故) 박희봉(1924~88) 신부에게 전해졌고, 박 신부는 이를 가톨릭
계의 대표적 석학인 정의채(86·당시 가톨릭대 교수) 몬시뇰에게 건넸다. 

정 몬시뇰은 답변을 준비했고,
조만간 이 회장을 직접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다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
“건강이 좀 회복되면 만나자”는 연락이 왔지만,
이 회장은 폐암으로 한 달 후에 타계하고 말았다.

문답의 자리는 무산됐다. 정 몬시뇰은 20년 넘게 질문지를 간직했다. 
그러다가 2년 전 제자인 차동엽(53·인천가톨릭대 교수·
미래사목연구 소장) 신부에게 질문지가 들어갔다. 
차 신부가 여기에 답을 준비했다. 
그 답을 모아 연말에 『잊혀진 질문』(명진출판사)이란 책을 낸다. 
8일 경기도 김포의 미래사목연구소에서 정 몬시뇰과 차 신부를
단독 인터뷰했다.

가톨릭 신자이자 서강대 총장을 역임한 손병두(70) KBS 이사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교계의 최고 원로인 정 몬시뇰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차 신부님에게 넘어갔네요”라고 운을 뗀 뒤 
“이건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한 인간으로서 던졌던
인간과 종교에 대한 깊은 물음이다. 
차 신부님이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도 공유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차 신부는 

“몬시뇰께선 제 스승이시다. 종종 뵙고 교감한다
몬시뇰께 배운 가르침을 제가 대신 풀어냈을 뿐이다”고 답했다.
손 이사장은 삼성그룹 비서팀에서 10년간 이병철 회장을 보필했다.
탁자 위에 놓인 질문지를 본 손 이사장은
“당시 회장 비서실에 있었던 필경사의 필체가 틀림없다.
 딱 보니 알겠다. 

이 회장께 보고서를 올릴 때면 필경사가 깔끔하게 다시 써서 올렸다. 
오랜만에 이 글씨를 보니 참 반갑다”고 말했다.
질문지를 손에 들고 쭉 훑어보던 차 신부는
“이 질문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라.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던지는 종교적 물음과 만나게 된다”
고 말했다. 마주 앉은 차 신부에게 물었다. 
이병철 회장이 던졌던 인간과 종교, 그리고 신에 대한 
잊혀진 질문’을 24년 만에 다시 던졌다. 차 신부는
“이 질문지에는 지위고하도 없고, 빈부도 없다.
인간의 깊은 고뇌만 있다.

나는 그 고뇌에 답변해야 하는 사제다. 
그래서 답한다”고 말했다.
글=백성호 기자사진=박종근 기자

첫 질문은 둘러가지 않았다. 바로 과녁의 정중앙을 향했다. 
“신이 있는가. 있다면 왜 나타나지 않나.” 역사 속에서
수없는 무신론자가 던졌을 물음이다.

무신론자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유신론자도 기도 속에서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이 회장의 첫 질문은 그렇게 단도직입적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원본을 복사해 그대로 싣습니다.
한자 포기는 읽기 쉽게 ( )안에 음을 담았습니다.

1. [神(하느님)의 存在를 어떻게 證明할 수 있나?

神은 왜 자신의 存在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영역 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 
그러나 가청영역 밖의 소리에도 음파가 있다.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

☆감각  랭보우☆


치열하게 살아왔던 우리 70세대들
자식들에게 무얼 남겨 주려애쓰고 계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 사라져 버릴수 있습니다

사라 지지 않는다해도 
목적으로서의 돈과 재산은 오히려 자식들로 하여금 
부모에게 의존하게 하거나 세상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잃어 버리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또한 돈과 재산은 자식들의 앞날을 해치게하거나 
바람처럼 흩어지게  할수도 있습니다.

우리 자식들에게 지워지지 않고 남는것은 
우리의 육체가 빚어낸 삶의 모습임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평소-
벽에 붙여두고 즐겨 읽는 시가 있어 올려 드립니다.

 ♡-감각  랭보우.·´″″°о °♡
한여름의 상쾌한 저녁,보리 이상에 찔리우며,
풀밭을 밟고 오솔길을 따라 떠나 가리라

꿈꾸듯 내딪는 발걸음, 한 발자욱마다 신선함을 느끼고
모자도 없이,머리카락은 바람결에 춤추듯 날아 오른다
말을 하지 않으리, 생각도 하지 않으리

그러나
내마음속 깊은곳으로 부터 사랑만이 솟아 오르네
나는 어디까지나 멀리 .떠나 가리라

마치 방랑자 처럼...

자연과 더불어- 여인을 데리고 가는것처럼 
가슴 벅차게

각감 이라는 이시는 프랑스의 천재시인 (랭보우)가 
1870년 불과 16살의 나이에 지은 시로서,
눈앞에 마냥 펼쳐진 젊읇의 세계를 향해 떠나가는 
소년의 설레는 마음을 기막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건강과 벗  

돈보따리 
짊어지고 
요양원 가봐야 무슨 소용있나요?

경로당 가서 
학력 자랑 해봐야 
누가 알아 주나요?

늙으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그 자가 그 자요. 

배운 자나 
못배운 자나 
거기서 거기랍니다.

병원가서 
특실입원, 
독방이면 무슨 소용 있나요?

지하철 타고 
경로석 앉아 
포~~옴 내 봐야 누가 알아 주나요?

늙으면  
잘 생긴 자나 
못생긴 자나 그 자가  그 자요. 

모두가 
도토리키재기요.거기서 거기라오

왕년에 
회전의자
안돌려 본 사람없고

소시적 한가락 
안해 본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지난날의 영화는 
다 필림처럼 지나간 옛일 
돈과 명예는 아침이슬 처럼 
사라지고 마는 허무한 것이랍니다.

자식 자랑도 하지마십시오. 
반에서 일 등했다 자랑하고 나니 
바로 옆에 전교 일등 있드랍니다. 

돈자랑도 
하지마십시오 
돈자랑하고나니
저축은행 비리 터져
골 때리고 있드랍니다.

세계적인  갑부  
카네기, 
포드, 
록펠러, 
진시황은 
돈없어 죽었겠습니까?

건강만 있으면 
대통령도 천하의 갑부도 부럽지 않습니다. 

전문세락 이란 말이 있습니다.

개똥 밭에 딩굴어도 
저승보단 현세상이 더 즐겁다는 뜻입니다.

노년 인생 
즐겁게 살려거든  
친구 건강 많이 챙기십시요.

버스 
지나간 뒤 손들면
태워줄 사람 아무도 없듯이 

뒤늦게 
건강타령 해봐야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랍니다.

천하를 
다 잃어도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몽땅 다 쓰고 죽어라♡ 

어느 겨울, 간암 말기의 59세 환자가 호스피스 요양원으로 
커다란가방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원장님 앞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아무리 길어야 6개월밖에 못산답니다, 
여기 머물며 이 가방에 있는 돈만이라도 
다 쓰고 죽을 수 있을까요?"

어려서부터 신문팔이, 껌팔이, 구두닦이... 
안 해본 것이 없던 남자, 결국은 시장에서 옷장사로 
돈을 벌어 자식들 키우고 시집 장가보내고 났는데 
그만 덜컥 간암이 걸렸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오직 아버지의 재산에만 눈독을 들이더랍니다, 
그리고 재산분배 문제로 싸움 까지 벌이는 모습을 보고, 
내가 돈만 버느라 자식들을 잘못 키웠구나! 크게 반성을 했답니다.
또한 가난이, 모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시장에서 싼 막술에 
국밥을 먹으며 돈만 모았던 지난날이 후회스러웠답니다, 

그래서 변호사를 통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서약한 
뒤에, 현금 5,000만원이든 가방만을 들고 생의 마지막 6개월을 
보낼 곳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핀 이듬해 봄날, 함께 방을 쓰던 
40대의 위암말기 환자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진달래꽃이 분홍색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진달래가 저렇게 예쁜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지요
강남에 큰 빌딩을 가지고 있던 그 40대 남자 역시, 
그동안 오직 일밖에 몰랐답니다,

일하느라 밤도 새벽도 아침도 없었습니다, 눈도, 비도, 
구름도, 태양도 보이지 않았답니다, 재산이 불어나면서 
돈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일과 관계된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만나지 않았답니다.


그가 호스피스 요양원에 온지 3개월 만에 40대의 남자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개월 후에 
그 또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들고 온 5,000만원도 쓰지 못한 채...
일 때문에 호스피스 요양원에 오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죽음을 앞둔 많은 분들을 보았습니다,
결혼날짜까지 잡았다가 위암말기 판정을 받고 온 20대 
아가씨, 딸아이를 남겨 두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 밤마다 
흐느끼는 30대 아주머니... 
그런데도 무정하게 봄은 어김없이 왔고, 꽃은 
그토록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죽음을 숙연히 받아들여, 헌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으로 믿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회와 안타까움과 남은 것들에 대한 
미련을 지닌 분들이 더 많습니다, 
많이 갖고 누려본 분일수록 더욱 그랬습니다,

버리는 연습보다 모으는 연습만 하여, 두고 가기 가 
아쉬워 그랬을 것입니다.
《다 쓰고 죽어라》라는 책을 저술한 ‘스태판 폴란’은 말합니다.

'최고의 자산 운영이란 자기 재산에 대한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서 트로피처럼 모셔두지 않고 행복을 위하는 일에 
쓸 줄 아는 것'이라고, 그는 멋진 삶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오늘 당장 그만둬라[Quit Today]. 
똑같은 일을 죽을 때까지 하지 말라, 2~3년마다 돈이 몰리는 
곳을 찾아 새로운 일을 시작해 라, 

기업은 당신에게 평생을 약속하지 않는다, 
당신은 직장에서‘용병’일뿐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있으면 서슴없이 옮겨라 

둘째, 현금으로 지불해라[Pay Cash].
카드를 사용하면 자기에게 과도한 물건도 덥석 사게 된다, 
땀 흘려 번 빳빳한 지폐로 물건을 사라, 
저도 모르게 낭비가 없어진다

셋째, 은퇴하지 말라[Don't Retire].
은퇴만 하면 ‘영원한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환상에서 깨라,
20년간 신통찮은 연금으로 연명 하면서 빈둥거리는 것뿐이니까, 
그러다보면 건강도 나빠지고 정신도 녹슨다, 
65세를 넘긴 뒤에도 새로운 일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넷째,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 
만약 당신이 첫째~셋째 충고에 따라 살아왔다면 
이미 충분한 재산을 모았을 것이다, 
자식에게 물려줄 생각 말고 여생을 최대한 즐겨라, 
유산이 없으면 자식들이 돈 가지고 다툴 일도, 
가산을 탕진할 일도 없다 

다 쓰고 죽으라는 말은 결국 후회 없이 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위하여 몸을 다 쓰고 간다는 것, 
모두 써야 할 것이 비단 재산만은 아닙니다. 
몸, 마음, 정신도 그렇습니다, 예쁘게, 아름답게, 고귀하게, 
모셔두고 자랑하려고 가꾸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달리기, 헬쓰, 요가, 모든 운동도 그렇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건강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서 돈 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영혼을 성장시키며 삶에 경험이 
되는 것으로 바꾸고 쓰기 위해서 모아야 합니다. 
모으지 않고 다 쓴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다 쓰면서 
그만큼의 경험을 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진리가 있습니다, 
결국 그 경험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쓰고 그만큼 버리면 얻는다는 것이지요. 
어렵겠지만 가족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 같은 것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와서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신만의 행복 기준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모셔온글 - 


         -옮긴 글-

 

봄내음 북한강을따라 문호리 수능리 벗고개 를 넘어...추억의 그길을 가다.(배경음악.연주 sancholong)

오늘의 라이딩길 .잠실-구리-미음나루까페촌-덕소-팔당-북한강길-믄호리-수능리-황순원길-벗고개-양수역

팔당호반 봉주르 까페앞  조형물수변공원 

문호리 수입리가는 입구- 북한강을 가로질러 화도 양-평가는 다리

서중면 문호리 보리밥집에서.

그렇게 많은 환우들로 북적이던 숯가마는 지금  사라지고 그자리엔  다른 사업자에게 넘어간듯...

눈물겹게 항암.방사선치료후  쇠약해진 몸을 추스리려 이곳을 찾았던 추억의 장소...서종 숯가먀

숯가마에서 나와 우리가 쉬던 나무 그늘..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정적만이 감도는 모습.

투병기간중 다니던 숯가마는 몇년전 숯가마 인명사고로  이미 폐쇄되고  같은 환우였던주인 여사장님은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신지 매우 궁금. 인생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능1리 벗고개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

소나기마을 가파른 고갯길을 구비 구비오르면 벗고개 터널길에 닿을수 있다. 이젠 힘에 부치지만 끌바 안하고 끝까지 온힘을다해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즈넉한 오지의  황순원길을 오르며  투병하던 그시간을 되돌려 봅니다..

수능1리는 양평에서 한때 유명한 팬션단지로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로 달라져있는 모습..한때 이곳엔 10여년동안 팬선 유행바람이 불었지만 지금은 고요하기만 한모습.

서후리 고갯길과 황순원길 갈림길  삼거리

온힘을 다해 벗고개 정상에 도착 ,목왕리를 거쳐- 양수역으로 갑니다.

젊은 청춘 한쌍의 청춘남녀 라이더가\ 고갯길을 올라 터널입구에 들어섭니다.

너널을 넘어 양평청계산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서 인증샷하고.. 급경사 다운힐구간을 따라 내려갑니다.

2020년 폐업한후  이곳을 지나치다 추억을 담고싶어 찍어놓은 사진.아련한추억의 그시간들..

추억의 시간속으로 ..그때 함께 웃고 울던 환우들이 세상을떠났습니다.

숯을 빼고난 가마에 들어가 온열치료를 하던 그시절..2000년~2005 사이

숯가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슬리퍼를 신고 휴계실에 앉아 기약없는 투병시절...2000년~2005 사이

 젊음의 초상​

                        -헤르만 헤세-​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청춘의 초상이
나를 마주하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광채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타버렸는가를
그대 내앞에 놓인길은

내게 셀수없는 번민의 밤과
엄청난 파도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길을 이제 다시는 걷고싶지않다.

하지만 나는
주어진 길을 정성을 다해 걸었고
그래서 추억은 보배로운것이 되었다.
어리석은 실패도 많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데미안의 작가"헤르만헷세"-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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