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하운드를 위한 버스
미국의 시외버스 회사인 그레이하운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도 코리아그레이하운드라는 명칭으로 진출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5층으로 구성된 기다란 3축 차체의 버스는 아직도 그레이하운드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버스는 GM이 오직 그레이하운드를 위해 만든 PD-4501 시니크루저(Scenicruiser)다.
차명의 PD는 '객실용 디젤(Parlor Diesel)'을 뜻한다. GMC가 버스 라인업에 썼던 명칭이다. PD-4501의 디자인은 레이먼드 로위가 방향을 잡았다. 로위는 물방울 모양의 연필깎이와 코카콜라 병, 미국 펜실베이니아 유선형 기차 등을 디자인한 거물급 산업디자이너다. 그는 버스에도 유선형 기차의 디자인을 접목시키고자 했다. 둥그스름한 전면부와 차체의 절반을 가로지르는 주름 등이 그 흔적이다. 그가 만든 프로토타입 GX-1은 완전한 더블 데커(2층)의 3축 구조를 지녔다. 두 번째 시제차인 GX-2는 롤랜드 게고가 디자인했다. GX-2는 앞뒤 데크의 높이가 다른 디자인을 채택했다. 이 디자인은 1920년 깜작 등장했던 비슷한 스타일의 버스를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결국 PD-4501는 GX-2의 형태를 따르게 됐고 1954년 출시됐다.
PD-4501는 독특한 외관뿐만 아니라 차체 크기 면에서도 차별화했다. 길이는 40피트(12.19m)에 맞췄다. 하지만 미국 대부분의 주가 35피트(10.66m)를 제한으로 설정해 일일이 규제 완화를 설득해야만 했다.
실내는 43석 규모다. 앞쪽엔 10명이 탑승하고 뒤편 1.5층엔 33명이 탈 수 있는 구성이다. 독특한 점은 1.5층 맨 앞에 또 다른 윈드쉴드를 설치한 것이다. 덕분에 1.5층 앞좌석에 앉은 탑승자들은 전방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1.5층 앞좌석은 항상 인기가 많았다. 지붕에는 4개의 선루프도 마련했다.
PD-4501의 특징 중 하나는 차체 맨 뒤편에 설치한 내부 화장실이다. 장거리 운송용으로 등장한 만큼 오랜 시간을 달리면서 탑승자들의 생리현상에 대응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볼 일을 보던 중에 나는 소리는 엔진음에 묻혔지만 냄새는 어쩔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1.5층의 하부는 적재공간으로 활용했다. 공간이 꽤 넉넉해 승객들의 짐을 다 소화할 수 있었다.
PD-4501의 엔진은 GM의 4기통 4.7ℓ 디젤 엔진 두 개를 유체 커플링으로 연결한 방식이다. 이후 1961년 디트로이트디젤이 8기통 엔진을 선보이면서 V8 9.3ℓ 디젤로 변경했다. 변속기는 3단 수동이던 것을 4단 수동으로 갈아 끼웠다. 최고출력은 320마력을 발휘했다. 연료효율은 낮았다. 차체와 엔진 배기량이 큰데다 6×4 구동계를 갖췄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와 변속할 때의 충격이 제법 커 불편함을 겪는 탑승자도 있었다. 그러나 에어 서스펜션, 에어컨 등을 갖춰 기존 버스와 차별화했다.
PD-4501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구성이 약한 독특한 차체 구조 탓이다. 1962년 마지막 PD-4501가 GMC 공장을 빠져나왔다. 1,001번째 PD-4501였다. 이후 PD-4501는 1970년대부터 그레이하운드 노선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PD-4107이 물려받았다.
그러나 PD-4501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때마침 한국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고속버스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그레이하운드는 한국에 코리아그레이하운드를 설립하고 PD-4501 40대를 들여왔다. PD-4501는 국내에서 '개그린버스'로 통했다. 개그린버스는 그레이하운드의 심볼인 개를 그린 버스라는 뜻이다. PD-4501는 서울-부산, 서울-대전, 서울-전주 등의 노선을 오갔다.
1978년에는 코리아그레이하운드가 중앙고속에 인수되면서 PD-4501도 유니폼을 갈아입게 됐다. 중앙고속은 그레이하운드의 도장을 유지한 채 그레이하운드 대신 사자를 그려 넣었다. 이 도장은 아직도 중앙고속이 활용하고 있다. PD-4501는 그렇게 중앙고속에 소중한 유산을 남긴 채 1980년대에 모두 국산 버스로 대차됐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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